sempereadem;

영화, 가버나움 본문

arts/영화

영화, 가버나움

cassy 2019. 2. 20. 00:10

2019.02.11




'낭만이란 껍데기 속에 숨은 진실들을 직면하게 하는 영화' 


당위적이고, 공익적인 일을 꿈꾸면서도 그것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기를 바랬다. 그것을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나는 아직 그정도의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아름답고, 귀엽고, 비유적인 것들로 현실을 표현하는 일을 좋아했다. 시작은 그랬지만, 오늘 영화를 보니 나는 낭만이라는 껍데기에 숨고, 그것에 심취하여 현실을 보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지 않았나. 라는 성찰을 하게 되었다. 



"사는 것이 개똥같아요"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봤다. 시리아 출신의 빈민가에서 신원도 없이 살아가는 한 소년(자인)이 , 여동생을 잃고 부모에게서 도망쳐나와서 자신과 인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불법 체류자와 그의 아이를 만나, 일종의 연대가 일어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법 체류 중이었던 여성은 교도소에 수감되고 홀로 남은 주인공은 그 갓난 애기마저 난민들이 놓인 카르텔에 의해 잃어버리고 만다.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로 떠나고자 주인공 자인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서류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서류 없는 삶' 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기록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삶, 기록이 없다고해서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가? 태어나고 살아왔지만 나이도 알지 못하며,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온 것이다. 그 공간에 그들은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서류화된 삶이 당연한 우리는 서류화 되지 않은 사람들, 나와 다른 타자, 이방인을 경계하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튼 설상 가상으로 그는 서류 없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여동생의 죽음을 전해듣는다. 후반부에 영화는 여동생을 사지로 내몰았던 누이의 남편을 칼로 찌르고,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법원에서 부모에게 어떤 처벌을 내렸으면 좋겠냐고 하니까 다시는 애를 낳지 못하게 하는 벌을 주라고 한다 . 그 어머니 뱃속에 현재 있는 아이마저 . 진짜 사는 것이 개똥같아요. 이런 대사가 나오는데 또다른 아이가 뱃속에 있다는 것이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아이의 눈이 너무 슬프고, 진짜 보는 것이 고통스러운 영화였다. 어떻게 보면 결은 그을린 사랑과 유사했던 것은, 레바논을 배경으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이야기인 것이 공통점인데, 그을린 사랑이 여성의 피해서사- 전쟁과 그 '계'를 여성을 통해 보여준다면 , 여성과 동시에 최 약자인 아이의 시점에서 레바논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 영화를 보면서 그 아이의 눈이 소말리아 소년병의 눈처럼 증오가 가득한 눈이라고 생각했다. 12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떻게 하면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캐스팅 된 배우가 실제로 시리아 난민 출신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과 영화 내용이 연장선에 있었다(지금은 국제기구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보여주더라)



신원이 없어서 인간으로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실화는 아니지만, 그런 서사가 너무나 비일비재 하다. 단지 아이가 부모를 고소한다는 것이 그것을 영화로 만든 플룻이긴 한데. '자신을 낳은 죄' 라는 것이 정말 .. 누구에게나 부모에 대한 원망, 생명은 태어나지만 그것은 사실 타의 라는 것은 모두에게나 공통적인것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더욱 공감이 되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의로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저 그 공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그렇게 살아오고 그 대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는데. 영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배우들의 삶은 현재 지원을 통해 개선되었다고 생각해도 . 실제 그곳에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수만, 수천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 지극히 감성적인 리뷰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인데,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이성적일 수 없는 주제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그저 광기일 뿐, 효율과는 거리가 먼 국가차원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과 난민, 빈민촌, 아이, 그럼에도 끊임없는 출생.. 그저 단순히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서 그 삶의 1퍼센트 조차 경험해본 적 없는 내가 연민을 느끼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캄보디아에서의 봉사활동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여성의 피해서사: 생리가 시작되는 것 - 임신 가능 - 납치해서 결혼 ...이 굴레가 진짜 힘없고, 돈없고, 교육을 못받은 모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공통적인 폭력의 굴레라는 것이 너무 슬프고 화가났다. 


타인의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사회. 좋은 영화들이 많음에도 (다큐는 아니지만 이토록) 사실주의적인 영화를 보는 것이 나에겐 힘들다. (만약 부모를 법정에 세우는 행동이 없었다면 정말 지쳐버렸을 것이다. 부모를 법정에 세워 날 이렇게 살게한 죄를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그 가족 자체가 처한 구조에 대한 외침이라고 느꼈다) 청각도, 시각도.. 나의 높은 공감능력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공감으로 그쳐버리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기력함이 뒤따른다. 분명 나에게 누군가의 슬픔을 소비할 자격은 없다. 이렇게 가슴아픈 이야기가 전달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늘 금방 까먹고, 나도 모르는 사이 회피하고자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나와 같은 파편을 발견했다면. 피하지 말고, 연대하자 기억하자 생각하자. 나의 모순성을 인식하고, 그것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자.. 



+


영화가 말하는 공간: 가버나움(레바논)_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기적을 보여준 곳 놀라운 기적과 교훈을 전달했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예수는 가버나움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전쟁과 난민, 인종, 젠더 , 아이들, 여성 혼돈과 폭력, 마약이 난무한 무법지대 , 그곳에서 자인이 찾아간 곳은 다 낡은 놀이공원. 놀이공원 옆의 판자촌 이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