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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의 속

cassy 2020. 12. 5. 17:14

오늘 요리를 하려다 처음 알았다. 양파는 속부터 썩는다는 것을 . 겉으로 보았을 때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는데, 갈라보니 속이 누렇게 상했다.

속부터 썩는다.
속이 조용히 썩고 있다.

마음이 상한다 , 음식이 상한다.

상한다는 말이 참 신기하다. 신기하다로 밖에 표현 못하는 것은 내 어휘의 한계다.
또한, 마음은 어디에 붙여놓아도 말이 잘 붙는다.

 

나는 요리를 하는 것이 좋다. 어렸을 때 부터 내가 먹을 것 보다, 남이 먹을 것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스스로를 대접하는 느낌인 동시에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먹을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소소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로 야채를 씻으면서 계속 생각한다.

이 소소한 행복감,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싶은데, 이 최소한의 여유마저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 정말로 평범하고, 소소하게 살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소소’ soso,,, 의 기준은 무엇일까.

더이상 내가 대단한 것을 꿈꾸고 , 거창한 의미를 갖고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 마저도 유지하는 것이 간혹 너무나 힘이 든다. 그럴 때 집 ‘home’이 정말로 너무나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한편, 모순적으로 이 안락한, 풍요로움을 주는 공간에 대한 마음이 집에 대한 욕망으로 발전한다.
좋은 집을 사고싶다. 좋은 아파트. 좋은 집에 안락하고 편안함을 주는 ,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따스한 공간을 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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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익숙해지는 것, 이사를 염두하는 것이 약간은 서글프다. 어렸을 때 아빠 현장 따라 다니느라 지방 곳곳에서 짧게, 할머니가 우리 봐주시느라 잠깐 살았던 것들을 제외하고 나는 18-19년 동안 같은 집에 살았다. 그리고 20년 동안 한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다.

같은 구지만 완전히 새로운 동네로 이사왔다. 이전에 살던 동네는 이사와봐야 10분 거리였으니까. 지금은 30분 거리다.
오늘 처음 동네의 가게에 들어가 커피를 사는데 낯설었다. 이방인이 되어 산책을 하는 느낌. 사장님이 수줍게 웃어주셨는데, 내 돈 내고 커피 산 것이지만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환대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 낯선 동네로 이사오기 싫었다. 그리고 이 집도. 엄마 맘대로 자기 가게 가까운 곳으로 막무가내로 결정한 것이었고, 이사오기 전부터 아빠랑 돈문제로 잡음이 끊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집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다시 ‘엮였다’고 생각해서 더욱 싫었다. 학교는 멀어지고, 익숙한 생활 환경이 다 다뀌는 것도 씁쓸하다. 유일한 장점은 바로 옆 아파트에 친구가 산다. 하지만 이 공간은 여전히 내게 낯설고, 나는 대학을 다니고 근래에 자취를 시작할 것 같다. 혜화는 내가 몇 년째 드나드는 공간이고 내가 일하고, 살아가는 곳이 될 확률이 높다.

자취하지 않으면 몸이 버티지를 못할 것 같아서.. 예대생에게 자취나 작업실은 필수다. 그래서 요즘 엄마한테 내 방을 줘야하나 싶다. 어제 이사짐을 처음 풀고 방청소를 6시간이나 했다. 엄마 옷이 하나도 없어서 옆 방에 가서 옷장을 열었는데 눈에 띄게 줄었다. 엄마는 옷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인데 옷을 다 버린 걸까. 엄마가 엊그제 집에 왔을 때 태어나 여태까지 해본 것 보다 많은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근 한 달 만에 본 얼굴이 수척해졌다. 엄마는 늘 스스로 굴을 파고 들어가 함정에 빠지고, 이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엄마를 보면 늘 복잡한 심경인 이유는 엄마는 우리와 그 일을 , 자신의 힘듦을 공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사온 지 2달.. 아직도 현관문 비밀번호를 못 외웠다. 충격인데 생각보다 잘 안외워진다. 우리집으로 꾸며야 하는데 다시금 이사갈 것 같다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일까. 사실 일주일간 밖에서 살았는데 공연 대사는 다 외웠지만 쉐어하우스 비밀번호도 결국 못 외웠다. 집의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 심리는 무엇일까 >> 얘 글로 한번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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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집이란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져올까. 자기 집을 다 빼앗긴 여자. 자기 집을 찾아가지 못해 밤마다 남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다니는 여자. 또는 사라진 집 위에 새로 생긴 집에 들어가 자신의 번호를 누르는 사람. 신기하게도 그 집의 문이 열리고 빈 공간이 자신의 앞에 펼쳐진다. 여자는 그곳에서 자신이 살아온 공간의 역사를 발견한다. 집 위에 새로운 집 그 집이 무너지고 또 새로운 집 , 그리고 새로운 사람, 전세 월세 전세 자가, 그리고 경매.. 그 집이 세워진 땅의 역사.’ 1분 만에 생각한 아이디어


기억은 자의적으로 재구성된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한다. 이야기는 자의적으로 만들어진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수많은 기억들 , 그리고 사건들이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친다. 나는 하나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 늘 아득바득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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