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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이 인접해 왔을 때에야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본문
가시화된 죽음과 비가시화된 죽음.
어쩌면 죽음은 나의 일상에 만연해 있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라는 하루키의 말처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접하는 죽음은 비가시화되어 있기에 나는 연민을 초월하는 비극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지 못한다.
2019년 4월 26일 오늘 내가 키우던 햄스터가 떠났다.
9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긴 했지만,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작년에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에게 그림자가 다가왔을 때 나는 할머니와 같은 병실에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할머니의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고통이 가득한 비명을 들어야만 했을 때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할머니는 곧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눈이는 어느정도 내가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될 만큼 성장했을 때 , 우리 집에 온 최초의 생명체였다. 뉴질랜드에 다녀오니 집에는 작은 햄스터 한마리가 와 있었다. 눈이 오는 날 집에 데려와서 '눈이' . 햄스터를 키우키 위해 동생은 카페에 가입하여 가정분양을 알아봤다고 한다. 동생은 3년 동안 눈이를 아주 애지중지 키워왔다.
지지난주, 나는 눈이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눈이가 한쪽 눈을 잘 뜨질 못했다. 눈에 눈꼽이 껴서 내가 닦아주어야만 초롱초롱한 눈을 뜰 수 있었다. 일종의 전조증상이었던 셈이다. 며칠 후 그동안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의뭉스러울 만큼 눈이의 등에는 큰 혹을 발견 했고 나는 바로 다음 날 동물병원에 눈이를 데리고 갔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눈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힘이 넘치는 녀석인데 밖에 내 놓아도 자꾸 존다. 소독하고 검사를 받느라 털이 젖어서 더 작고, 낯선 공간에서도 계속해서 잠이 드려는 이 생명체가 너무 가여웠다. 검사 결과 등에는 농양이 있었고, 눈에는 고름이 가득했다. 심장 부근에는 물혹이 4개가 넘었고 배 안에도 종양이 있다고 했다. 종양을 제거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어 쇼크사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농양은 마취 후 뺄 수는 있지만 사실 눈이가 얼마나 더 살 지도 모르는데 수술까지 시키는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검사와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 날 눈이는 한동안 잠에서 깨지 못했다. 계속해서 잠만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약을 먹이기 시작하고, 눈이는 열심히 쳇바퀴도 타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배에 난 혹 땜에 몸이 무거워 화장실을 넘어다니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서 어떤 힘을 발견했다. 주사기를 손에 쥐고 약을 열심히 빨아먹는 모습에 진부한 표현으로 작은 몸으로 죽음에 맞써는 어떤 생명력을 발견했달까. 우리 가족은 정성을 들여 일주일 동안 눈이에게 약을 먹이고, 눈에는 안약을 넣어줬다. 엄마는 눈이에게 약을 주러 회사 점심시간 마다 시간을 내어 집에 들렀다.
햄스터의 수명은 보통 2년에서 길면 3년이라고 한다. 눈이는 내가 21살때 우리 집에 왔으니 17.1월 부터 19.4월 까지 만 2년을 꼬박 채운 셈이었다. 고작 유전자 몇 개의 차이로 생명의 길이가 이렇게 다르고, 내가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집에 온 생명체에게 2년은 평생의 시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일주일이 지나고, 눈이는 잘 버티는 듯 했다. 엄마는 매일 영상을 찍어 눈이를 남겼다. 그리고 오늘 연극을 보고 기분좋게 집에 들어 왔는데. 집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울고 있는 동생을 발견하고 난 눈이의 집이 종이 배딩으로 덮여있는 것을 보았다. 눈이의 집을 들어 만져봤다. 눈이는 자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몸은 딱딱했다. 작고 , 새 같았다. 갈수록 살이 빠져 종양의 크기가 머리만해지고, 새끼 때의 체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눈이는 잠들었다. 작은 햄스터였지만, 나는 오늘의 경험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인지할 정도로 커버린 내가 이제 눈이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새로운 생명체를 맡아 키우는 것은 큰 결심 없이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늘 이별을 전제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죽음은 힘이 들고, 많이 슬프다. 이별에 능한 사람은 없지만 나는 아직까지 특히나 이별이 낯설고 이에 서툴다. 내게 이별을 이겨낼 힘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뜩, 관계라는 것이 무서워졌다. 진심으로 눈이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