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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공연

햄릿, Hamlet

cassy 2019. 2. 28. 02:05



NT - Live <햄릿>


2015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베네딕트 컴버비치 주연의 햄릿. 2016년에 국립극장에서 NT 라이브로 상연되었었는데 이번에 메가박스 필름 소사이어티를 통해 재개봉하여 오늘 보고왔다. 3시간의 꽤나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인터미션은 없었다. 중간에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진 않아 잘 보고왔다. 



  현대적 배경으로 햄릿을 가져왔지만 원작을 충실히 따른, 클래식한 느낌의 햄릿이었다. 연출이 전체적으로 깔끔? 좋았다.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실황영상이므로 한번 더 연출된 작품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무대의 구도가 대각선이라고 느꼈는데, 관객 입장에서도 그랬는지 궁금했다. 대극장극으로 무대가 넓고, 공간이동이 잦은 만큼 한정된 공간 내에서 변용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세련됐다고 느낌(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매끄러운 연출이었다) 전체 암전이 드물어서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무대 전환도 자연스러웠다. 처음(식탁-결혼식)과 마지막(죽음으로 얼룩진 궁궐),  장면연출, 긴 스퀘어 테이블 및 조명을 포함하여 무대와 음향,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잘 어우러져 공연의 합이 좋았다고 느껴졌다.  


-햄릿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복수를 유보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순간(그러나 그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은 극의 시작부터 없었지만?) 지나치게 충동적이다. 햄릿의 우유부단한 측면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극 자체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끼다가 어느 순간 햄릿의 복수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시점이 있었다. 그의 복수는 정해진 항로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산으로 가버리고 마는데 나도 공연을 보는 중간에 잉? 왜이렇게 산으로 가고있지.. 라고 새삼 느낌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배우, 굉장히 우울감이 강한데 연기 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캐릭터 해석을 그렇게 한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오필리어가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안들었던게 그녀가 너무 큰 슬픔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 햄릿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느낌이 대사 이외의 것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햄릿의 연기는 꽤나 무거운 편이다. 배우가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하는 것이 관객의 눈으로도 보였다. 캐릭터 해석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는 햄릿이 좀 더 유약하고, 그의 성격에서 무른 포인트가 더 잘 드러나길 바랬다. 내가 생각하고 느껴오던 베네딕트 컴버비치는 이성적인 부분이 더 강한 사람이었고 햄릿의 회의적인 부분을 잘 연기한다. (햄릿의 이성적이고, 명석한 왕자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광증에 시달리는 햄릿을 연기하는 것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포인트도 있었다. 오필리아와의 관계도 엄청 절절하지는 않았다.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은 어느 하나 단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명확한 선악구분이 없어서 절대적인 악인은 없다고 생각했고, 이성과 감성의 줄타기가 반복된다.  클로디어스의 경우에도 어렸을 때는 그가 그저 악하다고 여겨졌지만, 지금보면 질투와 사랑, 권력욕은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이기에 마냥 욕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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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공연 실황 상연 전, 배우의 짧은 인터뷰 스케치가 나온다. 베네딕트 컴버비치는 "우리 햄릿에서 우리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을모두의 마음 속에는 햄릿이 있다" 라고 했다. 이 부분에 동감. 

우울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필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생명을 갉아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햄릿을 보면서도 이 외부적 환경으로 인한 우울에 대해 생각했다. 햄릿이 자의로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복수도 오로지 그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없지 않나. 타율적 복수와 그의 우울, 이성과 회의, 충동적 행위의 연속, 죽음..


-흙: 무덤지기, 생명력이 사라지고 남은 것들 

극의 중반부에 들어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궁전 내부를 상징하는 무대공간이 흙 바닥이 된다. '흙'이라는 메타포는 꽤나 평범하지만 주제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 죽음으로서 우리는 본래(흙)의 것으로 돌아간다. 


-사진: 순간을 영원으로 포착하여 종이에 머물게 하는 것,  기록, 기억, 

-기록하는 것, 진위 여부를 떠나 '존재'를 위해서는 기록이 우선이다. 

오필리아가 카메라를 소품으로 가지고 등장하고,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에서도 그녀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가득한 캐리어를 들고와 사람들 앞에 두고 사라지는 것인데 카메라는 어떤 상징성을 지닌 오브제인지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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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보았던 햄릿은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으로 퍼빗으로 죽은 등장인물을 부활시켜 진행되는 각색 버전 이었다. 구조도 좋았고,  공감되는 측면이 많아 재밌게 보고왔던 기억이 났었고 오늘 NT 버전 햄릿을 보고 나서 이 작품이 다시 한번 더 생각이 났다. 햄릿이 제시하는 여러 주제의식 중 '죽음'에 포커스를 맞췄었다고 보여졌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열렬히 바라는 결말이 아닐까, 산울림 버전에서는 "죽는건 잠자는 것" 이라는 대사가 반복되었고  햄릿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의식을 통해 부활시키고 다시 죽음으로 향하는 이야기 구조를 보았을 때 그렇게 느꼈었다. 죽음을 경험해 본 바도,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서 무의식적으로는 죽음을 갈망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했었음.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지났고, 400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의 작품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살아 숨쉬고 있다. 그의 희곡을 읽다보면 , 그가 정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생각이 퐁퐁;; 햄릿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읽을 때, 공연을 볼 때 나의 심리적 , 상황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번엔 정말로 지쳐있었다. 이번에 햄릿을 본 것을 계기로, 또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을 다지게 된 것 같다.  


햄릿의 여자버전도 얼른 보고싶다. 작년에 엘렉트라를 보았을 때 여자버전의, 내가 생각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유약한 모습의 햄릿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지막으로, 우울과 광기에 대하여 


햄릿이 자신의 문제를 광증을 연기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든다. 광증이 아니었다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슬픔에 대처할 수 있었을까.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오디세우스가 광증을 연기하며 트로이 전쟁 출정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미친듯한 연기는 그때부터였을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면 아래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순간 어떤 선택-행동 이 이어지고, 사건(행동의 결과)이 발생한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감정을 인물들을 통해 그려내며 (그리고 그 인간군상들은 현대적 관점에서도 늘 존재함) 필연적으로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것 같다..


삶과 정체성, 존재론적 회의, 복수의 유보, 삶이라는 굴레 앞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과 문제를 당면하는 개인, 사회와 개인, 정치적 상황에서 개인이 대처하는 방식, 성격비극, 피해서사, 정의, 복수, 사랑과 욕망,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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