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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사라짐, 맺힘』 본문
김현, 『사라짐, 맺힘』
"억압이 있다고 해서 할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이 제대로 진전되어 나가지를 않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할 말을 못하는 것이다.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실 이 엄청난 불빛의 대화 앞에서 내가 자신 있게 뱉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는 해후를 알리는 '안녕' 이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래 나는 한없이 부르짖고 있었다 --'안녕 안녕' "
"책읽기는 즐거운 일이여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대부분의 경우 책읽기는 즐거운 고통이다. 나는 그 고통을 최근에 윤흥길의 황혼의 집을 읽으면서 다시 느꼈다. 그가 고통스럽게 읽은 세상을 나는 그의 책을 통해 즐겁게 접근해갔는데 그 책을 덮고 나니까 다시 그가 느낀 고통만이 내 속에 남아 있었다. "
"세계가, 내가 없어도 있을 때와 똑같이 활기를 띠고 진행되리라는 것을 느낄 때의 허무감."
시간을 두고 책을 조금 여유롭게 읽으려고 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이 책을 이번 달 신간으로 소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느낌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집어내는지. 허무감을 느낀다는 표현이 너무나 공감됐습니다. 사실 아주 작은 존재일 뿐임에 지나지 않고, 필멸하는 것이 숙명인 존재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정말 평생의 공부인 것 같습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글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롭게 편집하여 산문 [문지 에크리] 시리즈로 출간했습니다. 김현이라는 이름은 여러 번 접했지만 그의 글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서 출간 소식을 듣고 자연스레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요, 90년에 작고한 그는 『문학과지성』을 공동으로 창간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작가에 대해 찾아보다 『입속의 검은 입』의 해설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인데요, 해설을 쓴 필자도 몰랐다니 조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글이 작가 그 자신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생각임을 고려해보면 그 자신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 30-40대 무렵의 한국생활, 타지 생활 등 그가 어떤 고민을 하며 그때의 시기를 살아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필사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이 많았는데 90년에 작고하였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글이 작가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는데 그의 시간은 이미 멈춰버려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무언가 서글프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네요.
테마서평:http://www.bnl.co.kr/blog.do?b=46069459
신간추천: http://www.bnl.co.kr/blog.do?b=46069457